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쿠가와 이에츠나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[[한국 한자음]] 한정으로 증조부인 [[도쿠가와 이에야스]]와 [[동명이인]]이다.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徳川家康(덕천가강), 이에츠나는 徳川家綱(덕천가강)이다. 그의 치세는 [[조선]]의 [[효종(조선)|효종]], [[현종(조선)|현종]] 치세기와 거의 일치한다. 또 '''[[에도 막부]]의 기틀을 확립한 [[쇼군]]'''으로서 [[조선]]으로 치면 [[성종(조선)|성종]]과 비슷한 타입의 통치자라고 볼 수도 있을듯 하다. 이전의 쇼군들과는 달리(?) 상당히 너그럽고 인자한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져있다. --인지도가 낮아서 그렇지 인품만 따지면 역대급 쇼군 중 하나라[[카더라]]-- 그의 인품과 관련된 일화가 몇 개 전해져오는데, 우선 [[쇼군]]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누군가가 [[망원경]]을 바치면서 [[천수각]]에서 [[망원경]]으로 내려다보면 어떻겠냐고 하자 이에츠나는 '''"나는 [[쇼군]]이지만 동시에 [[소년]]이다. 내가 [[천수각]]에서 [[망원경]]으로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겠는가."'''라면서 [[망원경]]을 손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.[* [[망원경]]이 뭐 어떻냐고 할 수도 있지만 옛날 시대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이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] 또 아버지 이에미츠가 신하들과 유배된 죄인들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을 때 이에츠나가 유배된 죄인들에게 먹을 것을 주느냐고 물었다. 신하들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이에츠나는 '''"생명을 소중히 하려고 유배형을 내린 것인데 왜 먹을 것을 주지 않는가."'''라고 말했고, 이에미츠는 이에츠나의 말에 기뻐하며 '''"이런 말을 한 것은 이에츠나가 처음이다."'''라며 유배된 죄인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할 것을 명했다고 한다. [[쇼군]]이 된 이후에는 이에츠나가 식사를 하는데 우연히 이에츠나의 [[국(요리)|국]]에 [[머리카락]]이 들어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. 시종이 당황하자 이에츠나는 "[[그릇]]을 비우고 한 그릇 더 가져오너라."라고 명했다. 국에 문제가 있어서 바꾸는게 아니라 한 그릇 더 먹는 것처럼 말해서 요리를 한 사람이 곤욕을 치루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고. 신하들의 의견을 많이 수용했는데, 그러다보니 정무를 신하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'''"그리하거라."''' 하고 결재하는 일이 잦아져 '''그리하거라 님'''(左様せい様)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일화도 있다. 반면 상기한 성품과 거리가 먼 사건도 있었는데, [[1653년]]에 키우치 소우고로(木内惣五郎)라는 사람이 과도한 세금에 대한 상소를 올렸다가 사형에 처해진 사건이 있었다. 이는 당시에 [[쇼군]]에게 직접 상소를 올리는 행동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. 또한 재위기 시절 이던 [[1666년]] 9월 4일 당시 [[조선]]에서 탈출한 [[헨드릭 하멜]] 일행이 탈출하여 [[나가사키]] 근처 고토섬에 도착하였고 그들을 심문하여 조선의 정세, 국제 관계, 나라 상황 등 국가현안뿐 아니라 문물, 풍습과 같은 부수적 분야를 포함한 총 54여개 항목에 대한 조사를 단 하루만에 진행하였고 이를 무기로 조선을 외교적으로 압박했었다.[* 남은 일행들을 일본으로 보내달라고 조선측에 외교문서를 보냈다고 한다.] 그의 치세 기간 중에 [[세키가하라 전투]]로 유배된 [[우키타 히데이에]]가 향년 8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. ~~오래도 살았다~~ [[1655년]]에는 [[조선통신사]]를 맞이 했었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